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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육아를 하는 사람과, 유년기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위한 알랭 드 보통 기획 [유년기를 극복하는 법]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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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뜨니입니다.
오랜만에 책 리뷰로 돌아온 것 같아요.
그동안 일을 다니고 앓고 있던 병이 심해져 글을 한동안 쓰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꾸준히 들려주시는 분들 덕분에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유년기를 극복하는 법]이라는 인문 책에 대해 리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육아를 하고 계신 분들이나 유년기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니 주의 깊게 봐주시고, 
또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
 
그럼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유년기를 극복하는 법] 책은 알랭 드 보통의 기획으로 인생학교에서 지었습니다!
책이 매우 얇고 가볍고 얇고,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어려움(?)이 많이 없었어서 술술 읽혔던 책 중 하나입니다!
 
 
 
 
1장의 이름은 과거를 이해하는 실마리 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되어,
나의 현생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과 엮어 설명해주고 있어요! 

 
심리학에 따르면, 성인기 자아를 받아들이는 일은 유년기의 여러 불편한 (심지어 우리에게 정신적 외상을 입힌) 사건들을 되돌아보고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가장 끔찍한 기억들을 해독하고, 나아가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_14-15p
 
 
 
 
 
 
 
 

 
속물적인 양육자의 슬하에서 자란 아이는 세속적 성공을 떠나서 자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찾아가는 어려운 과업에 매진해야 한다.
특별한 결과를 성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소중한 존재이며, 과거에도 항상 그러했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우리가 느끼는 날것의 고통과 욕망을 조리 있게 풀어 설명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단호하되 최대한 상냥하게 표현할 수 있다.
상대를 거부하면서도 깊은 호의를 보일 수 있고, 상대를 바보 취급하지 않고서도 의견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상대와 이별하면서 그와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분명히 알려 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남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 타인에게 지극히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하고, 그 내적 감각에 의지해 훗날 겪게 될 세상의 무관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고 단 한 명이면 족하며, 십육 년간 사랑을 받는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십이 년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사랑을 충분히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면 죽을때까지 수백만 명에게 존경받는다 해도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 어렵다.
반면 유년기에 충분한 사랑을 누렸던 사람은 수백만 명의 비웃음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불행한 유년기를 겪은 사람은 타인의 과장된 호응을 무리하게 찾아 나서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지나치게 부정적 반응에 부딪힐 가능성도 커지기 쉽다.
 
 
 
 
 
 
 
 

 
좋은 부모를 둔 아이일수록 낯선 타인에게 굳이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중략)
내면의 상처가 깊은 사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비난을 받으면 곧바로 생애 최초의 상처로 돌아간다.
현재의 타격이 과거의 상처와 뒤섞여 감당 못할 만큼 심각하고 격렬해진다. (중략)
타인의 공격에도 필요 이상으로 절망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감정적 심판을 항상 유념하되 현재 상황에 곧이곧대로 적용하지 않고 당장의 혹평과 분리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의 문제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진정한 문제, 즉 눈 앞의 비난이 아니라 과거에 겪은 양육자의 무책임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지금의 문제가 우리 잘못이 아님을 이해하고, 치명적으로 민감하면서 본직적으로 불안한 자기를 용서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세상의 공격을 멈출 수 없다. 하지만 개인사를 탐구함으로써 그 굥격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꿀 수 있다.
 
 
 
 
 
 
 
 
 

 
어느 누가 어떤 결함을 지녔든 이 새상에 존재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이다.
 
 
 
 
 
 
 
 
 

 
자신이 아무도 원치 않는 쓰레기라는 생각에 휩싸이면, 누군가에게 위협받거나, 정부의 감시를 받다가 투옥되거나,
배우자가 떠나거나, 조만간 낯선 이들에게 조롱을 당하리라는 망상이 뒤따른다. 게다가 그런 망상이 지극히 타당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런 일들이 생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혐오가 심해지면 그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필연이 된다.
 
 
 
 
 
 
 
 
 

 
 
불안의 학순환을 끊으려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스스로 비참해져도 싸다고 여기는 자기혐오자처럼 행동하고 있으며, 
그렇게 자기비판을 하다보면 앞으로도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된다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지 찬찬히 생각해 보고, 그 입장에서 자신의 현재 상황을 바라보아야 한다.
 
 
 
 
 
 
 

 
자기혐오와 수치심을 극복하는 일은 평생의 과업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익숙한 주제로 돌아온다, 심리적 문제는 대부분 마음껏 사랑과 귀여움을 받아야 할 시기에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인류의 정신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한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마술 지팡이를 휘둘러 사람들의 마음속 수치심을 제거해야 하리라.
그 순간 머나먼 은하계에서도 뚜렷이 들릴 만큼 커다란 안도의 한숨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이다.
 
 
 
 
 
 
 
 
 

 
아직 자기 외투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아이가 이처럼 거창한 기대를 받으면 오히려 공허감과 극심한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자신에게 양육자의 희망에 부응할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이 남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과
언제 정체가 드러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인생은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황금이 아니라 무쇠나 주석밖에 되지 못하는 사람도 충분히 사랑받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삶이 애초에 양육자가 품었던 거창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이와 같은 깨달음이야말로 진정 남다른 성취라는 것을.
 
 
 
 
 
 
 
 
 

 
과잉 성취에서 벗어나려면 유년기의 자신을 연민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원한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음을 인식하고,
현재의 '성공한' 자아가 마음속 깊은 상처에 대응하기 위해 이루어진 결과임을 깨달아야 한다.
과거의 자신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돌아보며 애도하고 분석해야 과잉 성취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과잉 성취자도 자신이 이를 하든 하지 않든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일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연결되고 이해하려는 욕구가 더 중요하다.
 
 
 
 
 
 
 
 
 
 

 
유년기에 (그리고 성인기에도) 종종 슬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고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에 슬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이 망가진 장난감이든, 날씨가 궂은 일요일 오후든, 부모님의 눈빛에 항상 어려 있는 비통함이든 말이다.
우리네 인생에는 종종 엄숙하고 서글픈 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무언가를 구매하라고 유혹하는 상업주의의 이름으로 슬픔에 마땅히 주어져야 할 자리를 지우려 들지 않는 문화가 필요하다.
 
 
 
 
 
 
 
 
 

 
희망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려면 문화 전반에 통합의 기술이 전파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 그리고 나아가 타인의 불완전한 모습을 좀 더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느 누구를 사랑하든 상대에게 완전히 만족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를 미워할 이유도 없다.
인간을 좋은 집단과 나쁜 집단으로 분리하는 천진하고 잔인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그럭저럭 괜찮은' 다수의 집단으로 포용하는 성숙한 태도로 나아가야 한다.
 
 
그 외의 3장에서는 
 
- 우리가 무너지는 이유는 너무 오랫동안 유연하지 못 한 채 억지로 버텼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간절한 목소리를 고집스럽게 외면해 왔다.
내면의 메세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감정적 학습과 소통을 게을리했다.
그 결과 한참 전부터 병들어 있었던 감정적 자아가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적 자아의 소리 없는 필사적인 분노를 이해하고 나아가 연민해야 한다.
신경 쇠약은 무엇보다도 감정적 자아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 우리는 갑자기 병든 것이 아니라 이미 병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단계를 무사히 겪어내기만 한다면, 우리의 위기는 유해한 현재 상황을 벗어나 한층 더 진실하고 솔직한 토대 위에서 삶을 재구축하려는 필사적인 시도로 남을 것이다.
 
 
- 위로는 인간이 서로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정다운 행위다. 위로는 사랑의 핵심에 가까우며, 죽고 싶다는 욕망과 그럼에도 견디다 수 있는 능력을 가르는 차이를 만든다.
이상한 일이지만, 우리는 (대체로 유년기에) 타인에게 제대로 위로받은 경험이 없으면 자신을 위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을 위로하는 능력은 양육의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등등 유년기에서 벗어나 나의 삶을 어떻게 고쳐 나갈 것인지, 어떤 방법을 쓸 것인 지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양극성 장애 환자입니다. 모든 양극성 장애 환자들이 그렇듯 양극성 장애만 가지고 있지도 않아요.
이 모든 걸 나의 유년기 탓이라고 돌리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어느 정도 연관은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이제 인정을 했으니 실천을 해보아야겠죠?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분들에게도 육아 서적으로 추천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내가 아이에게 무심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행동들이 상처가, 더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도 남는 흉터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저 또한 5살 아이의 엄마이기에 1,2장은 저의 육아와 비교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2023년도 3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인 만큼 저의 블로그를 읽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책 중 하나입니다!
유년기에 상처가 없는 분들이 있을까요, 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심코 던진 엄마의 한 마디가 큰 상처가 되기도 하거든요.
나의 행동들이, 나의 불안이, 나의 상처가 유년기의 어떠한 모습에서 온 것이라 생각하고 인정하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럼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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